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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용산 芙蓉山
글쓴이 사철가  2019-01-31 01:05:54, 조회 : 36



부용산 芙蓉山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그리움 강이 되어
    내 가슴 맴돌아 흐르고
    재를 넘는 석양은
    저만치 홀로 섰네
    백합일시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 데 없고
    돌아서지 못한 채
    나 외로이 예 서있으니
    부용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박기동 가사, 안성현 작곡 의 가곡. 아름다운 곡임에도 불구하고 오만 파란을 겪어야 했던 비운의 곡이었다.


슬프고 아름다운 노래


이곡의 작사가인 박기동은 벌교 출신으로 목포 항도여중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박기동에게는 박영애라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당시로선 고치기 힘든 병이었던 폐결핵을 앓게 되었고 결국 24살의 나이에 요절했다. 박기동은 여동생을 그리워 하며 시를 한편 썼는데 그 시가 바로 부용산이었다.

시가 너무 애잔하고 아름다워서 이 시를 접하게 된 같은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던 안성현[1]은 자신이 가르치던 16살 여제자 김경희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그 슬픔에 이 시에 곡을 붙여서 노래가 완성되었다.

이후 이듬해인 1948년에 항도여중 조희관 교장이 이 곡을 알게되고 항도여중 학예회에서 처음 이노래를 학생들을 통해 발표했는데 너무도 슬프고 아름다운 노래인지라 금새 목포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전라도 각지로 퍼져나가 많은 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이곡의 창작 배경을 두고 박기동의 고향인 벌교에서는 박기동이 요절한 누이를 그리워 하며 만든 노래다, 목포에서는 아끼던 여제자의 죽음에 슬퍼해서 만든 노래다라며 한때 창작배경을 놓고 설왕설래가 있었으나 이민갔던 박기동이 저런 배경을 밝히면서 정리되었다.


금지곡 그리고 저항가요


6.25 전쟁을 거치면서 금지곡이 되었다는 소문도 있었으나 사실이 아니다. 부용산은 당시 음반으로 취입된 바가 없었기 때문에 금지곡으로 지정할 수 있는 물리적인 여건이 되지 않았다. 부용산의 악보 역시 항도여고 학생들이 수기로 써내려간 것이 유일한 기록으로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을 정도로, 부용산은 민중가요이면서도 구전가요에 해당했다. 가슴을 저미는 시와 애닯은 곡조 때문에 당시 한 많은 국민들이 버릇처럼 즐겨 불렀고, 그들 중에 빨치산들 역시 있었을 뿐이다. 부용산이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와전이다.

또한 작곡가 안성현이 월북했다는 사실도 이 노래가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는 와전에 한 몫 했다. 안성현은 6.25 전쟁이 일어나자 이북은 예술인들의 천국이라는 무용인 최승희의 권유를 따라 처를 남겨둔 채 월북하여 2006년 평양에서 사망했다.

여담이지만 안성현은 최승희의 남편 안막의 조카라는 설이 있었다.[2] 그래서 안막의 영향으로 월북한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으나 안막과 안성현은 서로 고향이 다르기 때문에 삼촌 조카사이는 아닌것 같다고 한다. 만약 안성현이 안막의 조카라면 안막과 최승희가 숙청당할때 철저한 연좌제 사회인 북한에서 안성현이 살아남은 이유를 해명하기 힘들다. 북한에서 인민예술가 칭호까지 받은걸로 미루어보면 안막과 안성현은 상관없는 인물이 분명해보인다.[3]

부용산은 1970, 1980년대 운동권에서 저항적인 내용의 노래로 재해석되었다. 사실 저항가요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아름다운게 사실이지만 어쨌든 1960~1980년대에 민주화 운동가들이나 운동권에서는 이 노래를 저항가요로 많이 불렀다. 그외에도 노래는 전해내려 왔지만 작자미상의 노래로 구전될수밖에 없었다. 그럴수밖에 없었던 것이 작곡자인 안성현은 월북해버렸고 작시자인 박기동도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부용산 시를 지었다는것을 철저히 숨겨야 했기 때문이었다.[4]


되찾은 노래

부용산의 진짜 창작배경은 알려져 있지 않다가 이후 1998년에서야 박기동의 제자인 경기대 김효자 교수가 부용산의 원본을 발굴하면서 세상에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일보 김성우 논설위원이 이틀에 걸쳐서 부용산의 사연을 기고하면서 세상에 사연이 알려지게 되었다.

호주로 이민가 있던 박기동은 부용산이 재조명되면서 2002년 일시 귀국해 산문집 "부용산"을 출판했고 창작 배경을 정리해주었다. 이후 2004년 호주 생활을 청산하고 영구 귀국해 2005년 서울에서 87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다.

부용산은 본래 1절만 있었으나, 1998년에 원로 연극인 김성옥[5]이 호주로 박기동을 찾아와 2절을 짓는게 어떤가라고 권했다고 한다. 이에 박기동은 자신의 한많은 삶을 회고하는듯 2절을 완성했다고 한다.

여러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고 녹음했는데 대표적으로 안치환,한영애,이동원등의 버전이 유명하다.


-------   -----------   -------

[1] 대표적인 동요 작곡가로 유명했다. 대표곡은 <엄마야 누나야>

[2] 안막의 아버지 안기선은 자식을 무려 12명이나 낳았으나 안막을 포함하여 단 세 명만 살아남고, 나머지 9명은 불행히도 모두 일찍 죽었다. 안막은 살아남은 3명 중에 둘째 아들이었고, 안막의 형이 안보승, 동생이 안제승인데, 위키백과에는 안성현의 아버지의 이름을 안용승이라고 적어 놨다. 그 서술이 사실이라면 안성현은 절대로 안막의 조카가 될 수 없다는 건데, 물론 안용승이 일찍 죽은 9명 중 한 사람일수도 있는거고, 또 호적상 안막은 숙부 안창선의 양자로 입적 되었는데, 안용승이 그 안창선의 아들일수도 있겠지만, 안막이 안창선의 양자로 입적된 이유가 안창선의 후사가 없었기 때문이라는걸 감안하면 이것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간단하게 다시 말해서 안성현의 아버지 이름이 정말로 안용승이라면은 안막과 같은 승자 돌림인걸 감안하면 안성현은 안막과 친척 관계가 되고, 안막의 조카일수도 있는 확률은 높겠지만, 애초에 안성현의 아버지의 이름이 정말로 안용승인지도 불분명 하니 무조건 안성현이 안막의 친척이다. 혹은 조카다 라고 확신할수는 없는 것이다.

[3] 중앙일보 기사에 의하면 안성현의 부친은 민족 음악가 안기옥이라고 하며, 위키백과 자료에 의하면 월북 이후 판소리 발성에 관련하여 김일성과의 갈등이 있었고, 1974년 혜산에서 타계했다고 한다. 그리고 국립국악원에 있는 성우향 구술채록(PDF파일)에 의하면 안기옥의 동생이 명창 안기선인데, 안막의 부친 안기선과는 동명이인이다. 정리하면 안성현과 안막은 친척이 아니다. 아마도 동명이인 안기선으로 인해 잘못된 자료가 전해진걸로 추측된다. 참고로 안막의 부친 안기선은 천안초등학교의 전신인 천안사립영진학교의 설립자다.

[4] 박기동은 부용산의 작사자라는 이유만으로 이승만 정권부터 전두환 정권까지 늘 감시대상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집에 들이닥쳐서 박기동이 써모은 시들이 적힌 노트마저 빼앗겼다고 한다. 결국 이런 고난속에 박기동은 1993년 한국을 떠나 호주로 이민을 가버렸다. 모진 고초를 겪고도 박기동은 민주화 시대가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이민떠날 생각은 진작부터 하고 있었지만, 독재정권의 천인공노할 폭력 앞에 도망가는 모습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5] 연극배우 손숙씨의 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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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가

부용산은 빨치산 추모가로 만들어진 노래는 아니었다. 1947년 순천사범학교에 재직하던 박기동 선생이 요절한 여동생을 벌교 뒷산인 부용산에 묻고 내려오면서 애?은 마음을 시로 지었다. 목포 항도여중으로 옮겨 근무할 때 음악교사 안성현 선생이 역시 요절한 제자를 추모하려고 박기동 선생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었다.


▲ 노래로 보는 근현대사 강의를 하면서 빨치산 추모가처럼 알려진 ‘부용산’도 넣어 불렀다. 내가 즐겨 부르는 노래인데도 처음에 어디서 어떻게 배우게 됐는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악보를 보면서 부르지는 않았다. 악보는 1993년 3월에 나온 <<메아리 10>>에서 처음 보았다. ‘구전가요’라고만 표기되어 누가 작사 작곡을 했는지 몰랐다. 부용산은 빨치산 추모가로 만들어진 노래는 아니었다. 1947년 순천 사범학교에 재직하던 박기동 선생이 요절한 여동생을 벌교 뒷산인 부용산에 묻고 내려오면서 추모하는 시를 지었다. 목포 항도여중으로 옮겨 근무할 때 음악교사 안성현 선생이 역시 요절한 제자를 추모하려고 박기동 선생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 부용산이다. ‘엄마야 누나야’라는 동요를 작곡 한 안성현이 월북을 하고, 뒤에 빨치산이 즐겨 불렀다고 해서 부용산은 빨치산의 노래로 알려졌고 오래 동안 마음 놓고 부를 수 없는 노래가 되었다. ⓒ박준성

‘엄마야 누나야’라는 동요를 작곡 한 안성현이 월북하고, 뒤에 빨치산이 즐겨 불렀다고 해서 부용산은 빨치산의 노래로 알려졌고, 오래 동안 마음 놓고 부를 수 없는 노래가 되었다.

지리산 역사기행을 할 때면 소설 <<빨치산의 딸>>을 지은 정지아씨의 부친이며 소설 속의 실존인물인 정운창 선생에게 여러차례 안내를 부탁했다. 한 번은 대성골 초입에서 부용산을 불렀더니 “부용산이 너무 애절해 힘이 빠진다고 남부군 상부에서 공식적으로 금지시키기도 했다는데 어디 노래가 부르지 말란다고 안 부르나 그래도 많이 불렀지”하고 전해 준 적이 있다. 이제는 하종구 선생도 정운찬 선생도 돌아가셔서 그때의 노래와 역사를 직접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부용산을 부를 때 언제부터인지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의 ‘병든 장미’를 ‘붉은 장미’로 부른다. '빵과 장미'를 떠올리고 차별없는 평등한 세상이라는 뜻을 담으려고 그런다. 지금도 1년에 몇 번씩 지리산에 갈 때마다 ‘죽을 줄 알면서도 살려고 싸웠던 산사람들의 한 겨울 암담한 눈 길보다 이 길이 더 힘들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부용산을 부른다.

살아가면서 앞길이 막막하고, 하는 일이 답답하고 힘들 때, 노래는 위안이 되고 힘이 된다. 역사 속에는 각 시대마다 불렀던 노래가 있고, 노래 속에는 그 시대의 역사가 담겨 있다. 노래로 보는 근현대사 강의를 할 때 반주를 하면서 노래 부르려고 아코디언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몇 십곡의 노래를 악보 보지 않고 연주할 날이 언제가 될 지 요원하다.



박준성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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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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