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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마다 버리고 비우는 것이 道에 이르는 일이다
글쓴이 김훈  2018-02-17 10:52:48, 조회 : 706

평소에 내가 자주 聖賢의 말씀을 인용하거나 빌려다 쓴다하여 내가 그 언저리에라도 이르렀다 함이
아니며 끊임없이 그 분들 생각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몸짓임을 누구라도 모르지 않는다.
지금에 이르러 머리를 쓰고 몸을 움직여서 오늘 까지 갖추지 못한 특별한 재주를 새로 터득할 수 없고
사는데 부족한 것이 많다 하여 새로 재물을 모을 만한 뾰족한 방법을 알지도 못하니 민망하긴 하지만
그냥 이자리에 이렇게 앉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두커니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자하니 그 짓도 할 일이 아니다.
바깥 출입이 많은 편이 아니지만 어쩌다 날 만나자는 친구  있으면 사양하고 미적거림 없이 뛰어 나가
옛 이야기이건 요즘 이야기이건 세상살이에 대해서 여러 시간이라도 싫컷 이야기 하고 돌아온다.
그래도 남는 시간은 많다.
'노느니 念佛한다' 는 말처럼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날마다 '채움[日益]' 과 '버림[日損]' 을 거듭한다.
요즘 세상을 유심히 들여다 보면 '가르치는 것' 이 모두 채우고 더하는 요령을 말하는 것 같다.
지갑을 두툼하게 하고, 창고를 채우고, 땅을 넓히고, 지위를 높이고, 권력을 강하게 하도록 가르친다.
무엇이건 더 많이, 더 크게, 더 힘있게 ,더 높이기 위한 무한경쟁의 시대에 살도록 가르친다.
심지어 學問으로 지칭되는 지식마져도 날마다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시키고 말았다.
내가 채우고자 하는 것은 그런 類의 채움과는 조금 다르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잠시라도 게으름을 피우다가는 세상物情에 너무 뒤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느긋하지만 부지런히 신문을 통해서, TV 를 통해서, 띄엄 띄엄 손에 쥐는 書冊을 통해서
나의 상상력과 기억력이 마르지 않도록 知的 好奇心을 채우려고 노력 한다.
물론 그런 것들이 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노력하고 애쓰는 만큼 쓰임새나 效用性이
있는 건 아니다.
특별히 돈이 들거나 큰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치고는 보람도 있고
지금 까지 몰랐던 것을 하나 씩 하나 씩 차곡 차곡 쌓아가는 느낌을 가질 때는  날마다 조금 씩 조금 씩
늙어가는 것 마져 잊어버리는 효과를 덤으로 얻는다는 기쁨이 있기에 그리하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곳간에 재물을 채우거나 머릿속에 지식을 채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聖賢들은  '사람으로 태어나 배움[學]을  목표로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것도 새로운 것을 채우겠다는 또 하나의 욕심이다' 라고 말했다.
손에 쥘 수 있는 재물이나,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배움까지 '채움 이라 한다면 그보다 위에 있는 德目은
'날마다 버리는 것[日損]' 이라고 말했다.
老子께서 主唱한 <버림의 美學>은 當代에서도 기존의 사회 질서와 가치관에 대한 革新이었다.
그 분께서는 무엇이든지 많이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시절에 '날마다 비우라[日損]' 고
힘주어 말했다.
가진 것을 버리고 채워진 것을 비운다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채운 사람만이 버릴 자격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배우지 않고, 공부하지 않고, 思索하지 않고서는  버리고 비우는  방법도 알지 못한다.
열심히 산 사람만이 날마다 비울 수 있는 것이다.
버리고 또 버리다 보면, 비우고 비우다 보면 끝내는 無爲의 지경[得道]에 이를 것이다.'고 말했다.
<爲道日損 : 날마다 거듭 비우는 것이 道에 이르는 것이다.>
내가 가진 고집과 편견을 버리고, 내가 이룬 부와 명예를 나누고, 내가 쌓은 성공의 환희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것이 채우고 쌓는 일보다 훌륭하다는 뜻이다.
어차피 많은 것을 쌓아 놓지도 못했고 내 안에 가득 채운 것이라고는 없는데 무엇을 버리고 비운다는
말인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당치 않은 욕심을 버리는 일도 나 자신을 편안케 해주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잔뜩 가진 것에 짓눌려서 결국은 되돌릴 수 없는 亡身을 自招한 자들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 보면서 하는 생각이다.

                                  戊戌 元旦            如  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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